'너 이주연 근황 알아?'
몰라. 왜? 걔 살아있냐? 이상하다. 이쯤이면 객사했을걸? 내가 연말마다 봉은사 가서 빌거든. 번호? 그새끼 차단 박은지가 언젠데. 야. 나 아직도 지나가다 이주연 같은 인간만 봐도 발작하고 피-티-에-스-디- 오는 놈이야.
그러니까 내가. 이주연을 그 긴 시간 만난 건 뭐랄까. 인간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그 어떤 마지노선이었 달까?
나 아직도 압구정 갤러리아 앞에서 걔랑 두시간 대치하던거 꿈에 나온다. 그새끼 완전 개독종이야. 두시간동안 한마디도 안하고 노려보는데 ㅅㅂ... 꺼져라 걍 헤어지자. 하고 뒤돌았다가 쇠파이프에 얻어맞고 뇌진탕 와서 실비 올랐던 걸 생각하면 진짜...
아니 그 길바닥에 쇠빠따가 왜 있었겠냐고. 말이 돼? 그거 다 이주연이 나 후두려 패려고 갖다 놓고 주작한 거 아니겠냐고. 치밀한 새끼. 나 쳐 맞고 기절하던 그 영상이 아직도 인스타에 웃짤로 돌아. 내가... 내가 그 영상을 어떻게 잊었는데.... 가끔 새벽에 릴스 랜덤 돌다가 그 영상 발견하는 내 심정을 니가 알까? 모르지? 모르겠지. 쳐맞은 나만 알지 뭐... 몰라 꺼져.
근데...왜? 설마 ㅋㅋㅋ 걔가 나 궁금하대냐?ㅋㅋㅋㅋ 어?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건 아니야?
응... 알았어. 뭐 들리면 말해 줄게.
모르겠네.
내 귀에 걔 소식 들려오는 건 부고소식 뿐일 텐데...
하여튼...
응... 알았다...
끊어.
.
.
.
라고 지인과의 통화를 마친게 약 이주 전. 재현은 그동안 간헐적으로 잊으려 노력했던 주연이지만 왜인지 그날 이후로 자꾸만 눈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걔가 좀 특이하긴 했지. 약간 취두부 같은 존재 라고 해야 하나. 뭔 말이냐고? 맡으면 지독한데 그게 자꾸 생각은 나는게... 그래. 걔 만나면서 미친짓 많이 했었던 것 같아. 주연아. 내가 너 만족시켜주려고 땄던 레크레이션 강사 자격증. 취업할 때 그래도 도움은 되더라... 덕분에 OJT때 입에서 줄줄이 손수건 꺼내는 마술도 해 보고... 내가 신분당선 앞에서 그거 해줄 때 니가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그래. 뭐 그냥 그런게 생각나네.... 내가 그런 짓을 했었어... 그렇게 침대에 누워 구애인과의 지난 엽기적인 연애기간을 곱아보며 하하. 그땐 그랬지. 하고 just funny story^^v 로 흘려보내려 했는데........
그게 글쎄. 최근에 이주연을 너무나 많이 떠올렸기 때문일까? 어라? 이상하다. 부비부비. 설마 이거 봉은사에 띄운 연등의 결과? 죽어서 나타난거니? 아니지?
재현은 불현듯 미간에 뉘여진 총구를 밀어낸 채 눈을 비비며
눈앞의 인물을 훑어본다.
자.
인간이 살면서
헤어진 연인과 우연히 재회할 확률 대체 몇일까?
그 중
헤어진 연인이
갑자기
강도가 될 확률
또
그 중에서
헤어진 연인이
강도가 되어
내가 다니는 은행을
털러 올
확률은?
...아니.
들어봐.
말이 되냐고 이게.
근데 또
되네
걍…
"형."
"주연아...?"
"오랜만이네...."
"너...너 맞아...?"
들었어...
형 취업했다며...
...
여기구나...
그건 몰랐다. 진짜...
"너..."
여기서...
모하냐...?
아...
형...
그...
취업이 잘 안되더라고...ㅋㅋ
그래서...?
응...
(작게)
그렇게 됐어...
일종의
부업?
그런거...
나도 사실
이거
시켜서 하는 거야
근데
그...
형...
미안한데...
(크게)
"너. 뒤지기 싫으면 이 빽에 돈 쓸어 담아. 오만원 권으로만. 당장!"
9 to 5
왜. 그런게 있지 않나? 기라고 해야 하나? 기세라고 해야 하나?
최근 계속 몸도 퍼지고 피곤한 데다가 의욕도 없고 되는 일은 없고 만사가 피곤하고 지루하고 그냥 매일매일 똑같은 쳇바퀴 굴리는 햄스터처럼 사는 것.
아침에? 일어나면 그냥 대충 씻고 출근. 2호선 헬게이트에 참전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속으로 '거북이 등딱지 가방들 좀 앞으로 매라고 씨발놈들아...' 라는 작은 읊조림. 겉으론 영업미소 장착하며 인간이 싫어지는 하루의 시작.
지점 도착하자마자 옆 메가커피에서 샷 추가한 대용량 아메리카노 들고 대출영업 시작. 응? 네네 할머니. 네네. 대출이요? 글쎄요. 전 해드리고 싶죠. 억울하세요? 그럼 여기 이 주소로 혈서 투서하시면 아마 대통령 할아버지가 들어주실지도 모르거든요? 전 아무런 능력이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거라곤 여기서 버튼 몇개 클릭하는 것뿐이랍니다. 그러게요. 어쩌겠어요. 아 끝나셨어요?
자 그럼 구백이십오번 고객님. 예. 오셨어요? 지난번 말씀드린 서류 가져오셨어요? 아. 포스트잇에 적어드렸는데. 잃어버리셨어요? 그러셨구나. 우선 가져온 거 줘보세요. 응. 주민등록...증을 복사 해오셨구나... 그 저기 아버님. 주민등록초본 이라는게 있어요. 네네. 동사무소가면 떼 줘요. 그거 초본 가져오셔야 해요. 잠깐만. 저기 아버님. 이거 보세요. 여기 근린 시설이잖아요. 대출 안 나와요. 네? 대출된다고 했다고요? 안돼요. 이거 법적으로 안돼요. 게다가 불법 증축한거라 안돼요. 이거 봐요. 시세 매매가보다 지금 심지어 전세가가 더 높아요. 그럼 위험해서 대출 안나와요. 그알 보세요? 빌라왕 그런 거 아시죠? 지금 수원에 빌라왕 떠서 난리 났거든요? 이거 제 명함인데 집 한 번 더 알아보시고 여기 번호로 건물 주소 한번 보내주세요. 제가 되면 알아 봐드릴게요. 벌써 네번째 오시는 거라 그냥 해드리는 거예요. 네? 김치요? 아니 김치는 안 주셔도 되고요... 예예... 네...
뭐 이런 거 십여번 하다 보면 점심시간. 개저메뉴 먹자는 부장의 시선을 피하지 못한 죄로 추어탕집에 연행된다. Disgusting… 오로지 김치와 쌀밥 그리고 기본반찬으로 주어진 어묵 볶음으로 끼니를 갈무리하고 심지어 식사 후 커피사기 랜덤게임에 걸려 지출 삼만 이천원. 피눈물 삼키며 오전에 하던 똑같은 루틴을 오후에도 반복. 퇴근 전 업무 마무리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 근처 헬스장으로 출석. 몇 번 무게 치다가 그나마도 의욕 떨어져서 유투브 예능 클립 세 개 정도 볼만큼 유산소 하다가 그것도 귀찮아서 그냥 집으로 귀가. 하루 끝. 맥주 한잔 마시고 한숨 내쉬며 스포츠 뉴스 좀 보다 보면 골아 떨어져 잠들고 눈뜨면 다시 지루한 루틴. 평상시와 같은 아침의 시작.
필요해. 내 삶의 그 어떤 이벤트. 어쩌면 이직. 어쩌면 로또. 어쩌면 사랑.
"재현씨. 사랑은 틴더로 찾아. 틴더로."
틴더로 두 여성을 농락하고 있다는 김대리가 말한다. 재현은 영업 미소를 띄운다. '그러게요. 뭐라도 해봐야겠어요.' 정도로 마무리. 아 말 섞기 싫다. 생각하며 휴대폰으로 오늘하루 사주풀이를 본다.
소띠. 위기를 기회로!
[자세한 사주풀이 더보기 *클릭 시 복채 500원이 부가됩니다]
fuck. 하여튼 오만 군데가 다 상술이지. 결국 흥미를 잃은 채 휴대폰을 뒤집는다. 지금 유일한 소원? 제발 set me free... 집에 가서 침대에 좀 누워있고 싶다. 가능하면 48시간 정도 기절하면 좋고. "커피 마실 사람?" 박부장의 유혹. 재현은 외면한다.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저염. 저요. 저요.
어라? 재현씨. 오늘은 안 마셔?
아...네. 이제 카페인 끊어가지구요.
쩌비. 아쉬워하는 시선들. 야 이사람들아 양심이 있어 없어?
그럼 뭐... 아니 사줄테니까 마셔. 그래~ 맨날 재현씨가 샀잖아. 오늘 사줄게.
예? 아뇨. 됐어요... 아. 다녀오세요. 부장님 제가 창구보고 있을게요.
아이... 어떻게 그러나...
"진짜 괜찮아요. 어차피 지금 다 대출 고객밖에 없고."
재현이 영업용 미소로 웃는다. 다들 다녀오세요. 천천히 다녀오셔도 되고요. 오다가 사고나서 몇 년 천천히 오시면 더 좋고요. 하하하!
(이제 꺼져 좀)
*
어릴 적 꿈. 은행원. 왜? 몰라. 걍 장래희망 적을 때 엄마가 귓가에 속삭여서 세뇌당해 적어버림. 그 뒤로 어영부영 준비하게 됐고 어라? 일년 전 우연히 붙어버렸다... 그래.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사는거지. 지루하긴 한데 어차피 몇달 더하면 본사 갈 거고.
"일부 상환 하신다구요? 좋죠. 내년에 이자 더 오르거든요."
대충 두부두루치기로 점심 해치우고 식곤증을 이겨가며 점심시간 홀로 업무중인 이재현. 상대는 요주의 고객. 김명자씨. 대출을 핑계로 비타오백 털어가는 범인.
재현은 늘어진 테이프처럼 반복적인 대출상담을 진행하며 남은 고객을 살핀다. 김명자 외 두명. 대치2동 통장 한명덕씨. 다른 한 명은 뉴비. 손으로는 김명자씨를 위한 비타오백 오픈을, 눈으로는 뉴비를 쫓으며 오늘 개인 실적 우상향을 꿈꾸던 오후 열두시 이십사분. 갑자기 초멘나사이 남성 셋이 은행으로 들어선다. 갑자기 선글라스? 엠지라 이거냐... 하여튼 요즘 세상이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어어? 이런. 제법 곤란하다. 아무래도 대출고객은 아닌 것 같은데 김대리가 돌아오려면 아직 이십분은 남았다. 재현은 직업병으로 그들을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어라? 한놈이 정수기 옆 맥심 커피를 뒤진다. 그리곤 맥심 두 봉을 종이컵에 털어넣는다. 발끈. 이봐! 맥심은 한사람 당 한 봉지씩이라고! 으으. 거슬린다 거슬려. 결국 김명자에게 잠시만요 고객님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 기싸움 시작. "저기요? 저기 고객님?"
"어떤 업무 보러 오셨어요? 지금 점심시간이라서 일반 예 적금 상담은 직원이 없거든요?”
(두리번 두리번) (두리번 두리번) (두리번 두리번)
“십 분 정도 뒤에는 다들 오실텐데...”
(두리번 두리번) (두리번 두리번) (!!!)
“우선 대기 그 번호부터 뽑고 기다리시겠어요?”
(두리번 두리번) (두리번 두리번) (지그시 지그시…)
왠지모를 대치. 꼴깍. 뭔가 이상하다... 를 느끼고 있었을 때였을까? 이탤릭체 한 놈이 다가온다. 다가와. 다가와... 왜? "아니... 저 지금 아직 상담중인데... 왜... 왜 저를 잡으러 오시는..." 당황한 재현이 위기감지 능력으로 슬금슬금 데스크 하단의 비상버튼을 누르려 움직이고 있을 때. 불현듯 저쪽에 앉아 있던 한명덕씨의 고함이 들린다. 꾸에엑! 그리고 한눈 판 사이 재현은 제 미간 사이에 꽂힌 물건이 뭔가 싶어 바라보는데 잠깐. 이 촉감 감도 크기… 이거 설마 총?!!!
젠장. OJT에서만 듣던 은행 강도단이다!!
코드블루! 김명자가 덩달아 놀라 의자를 넘어트리며 일어선다. "김명자 고객님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였다간 당신. 죽습니다!!! 재현은 양손을 펼치며 그의 연간 vip 고객을 보호해본다.
내가... 내가 죽어도 당신은 지킵니다... (물론 진짜 죽으면 안댐.)
저쪽 업장 모서리에 있는 CCTV향해서 얼굴한번 비춰주고 제 앞에서 미간에 총구 들이민 놈을 바라보는데 어라라? 익숙한 미간… 앞니… 그러니까 재현은…. 에이. 설마. 미쳤나 내가? 하고 벌써 노안이 왔나 찌푸려보기 시전.
그런데 맞다. 너. 이주연이잖아?
아닌가?
아니야. 맞아. 맞다고.
인정하긴 싫지만...
미간 보니
존나 맞잖아.
"뭐야. 아는놈이야?"
강도단 아무개 (이하 아무개 1로 통칭)가 묻는다.
이주연이 대답한다.
"형님.ㅋ 제가 이런 찐따쉨 알리가 없잖아요?"
?
"뭐?!!"
"(작게) 형 진짜 미안. 좀 봐줘... (크게) 그래 이 개새꺄. 씨발 굼뜬거봐라. 죽고시펗?!!"
재현은 혼란스럽다. 양심냉장고 뭐 그런 프로그램 촬영인 걸까... 안색이 파리해진 김명자를 바라보면 아닌 것 같은데. 잠깐. 너무.... 너무 한낮이잖아!!! 아니나 다를까 지점 앞 ATM를 사용하고 나가던 소시민 1인이 들리는 소란에 인상을 쓰며 창문 안을 바라본다. 또다른 아무개(이하 아무개 2로 통칭)가 눈치챈 건지 손을 안주머니로 넣고 소리친다.
"뭐야 저새끼 뭘 봐? 그냥 죽여버리자!!!" "아악!! 잠시만요!! 미쳤어요?!!!"
이거 맞아? 일상에지친은행원에게들이닥친강도가헤어진구애인이라면? 같은 유투브 클립용이 아니라?
거짓말 치지마. 아 이거 뭐야. 서프라이즈 구나? 대체 이 극악의 컨셉은 뭐지. 엠넷이 부활했나... 그때. 지레 겁먹은 한 놈이 3시방향에서 천장으로 총구를 내민다. 경악. 설마. 겁주려고 쏘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그리고 이어지는 총성 세발. 모두가 귀를 막고 당황해 어쩌지도 못하는 사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내려치는 보안 철창이 내리친다.
"뭐야?!"
이주 전 매직한 머리를 부여잡고 재현이 소리쳤다.
"야이씨. 병신새끼들아!!!! 앗, 미안합니다!! 아니 여기 쌔콤있어요 씨발!!!"
"뭔소리야?!!"
뭔소리긴 뭔소리야. 은행 락 걸린단 소리지!! 재현은 감금되기 전 재빨리 달려나가 닫히기 직전 철창에 뛰어들어 탈출을 도전해보지만 어림없다. 그저 안전 이슈로 락걸린 문과 내려진 철창에 냅다 마빡박고 기절.
그리고 얼마나 지난걸까.
다시 눈을 떴을땐
무언가 상황이
바뀌어 있었다…?
/
사건발생 30분
...폰뺏김.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한명덕이 말했다.
"나 김명자예요."
"나! 한명덕이! 대치 이동 통장!"
"박수길. 국립대 교수입니다..."
"이재현... 여기 직원이요...."
재현은 세운 무릎에 이마를 박으며 은행에 갇힌 이 현실을 부정해본다. 지금 제 존재보다 천장에 박혀 있을 총알 세 알이 더 행복할 것만 같기도... 나는 무슨 존재일까... 지금쯤 내 소식은 뉴스를 탔겠지... 울 엄마 기절하겠다. 울 아부지 다음주 생일인데... 다롱이... 보고싶다... 난... 난 왜 여기 갇히게 된 건지....
결국. 오만원권만 털어가려던 깜찍한 계획은 급발진 총기난사와 함께 셧다운 된 철창으로 강제 감금 인질극이 되어버렸다. 문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누가 진짜 쏘래 빡대가리 새꺄!'
어떡해...혼난다...
이재현 외 3인의 소시민은 손이 묶인 채 지점장 사무실의 쇼파에 앉아있다. 모르겠다. 여튼 좆된것 같다.
"큰일이네. 나 두시에 김장배추 배달 오는데."
김명자는 현재 총기를 든 인질범들보다 곧 배달 올 김장배추가 더 걱정이다. 당연하다. 배추값 > 금값의 이십일세기. 시집간 딸, 방판 분철팟 전도사, 요즘 썸남 정씨까지 생각하면 오늘 당장 담궈야 하는 김치가 오십 포기. 한가하게 이런곳에서 노닥거릴 시간은 없다.
그럼 한명덕은 어떠냐. 사실. 솔직히.
한명덕은 별로 할일이 없다.
"아니 당신 직원 아냐? 뭐 방법 없어?"
몰라요.
직원 메뉴얼에는 지점에 들이닥친 강도가 지인이라는 옵션은 없었다고요...
"저도 잘 모르겠다고요..."
“자. 다들 감정적으로 굴지 맙시다. 이재현씨? 맞나요?”
박수길이 일어선다.
재현...씨? 자. 마음을 좀 느긋하게 먹으시고...
꺼져요...
다 그렇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꺼지라고요...
여기서 뭘 더 어떻게 꺼집니까......
달칵.
주연이다.
"거기 직원 잠깐 나와봐."
까닥이는 손가락.
뛰어가
물어뜯고 싶다.
"왜 그러시죠?"
"할말이 있어."
"여기서 하세요."
"개겨?"
재현은 별수 없이 일어섰다. ‘세상에…’ 김명자가 눈을 돌린다. 사귈때의 습관이 이렇게 무서운걸까? 등뒤로 팔뚝이 묶인 이들 가운데 홀로 귀갑묶기 버전으로 수치스럽게 사무실을 가로질러 나간다. 물론 묶은 사람은 주연이다. 묶다가 아습관적으로… 이지랄 이후 푸르기 귀찮으니 던져졌다.
터벅터벅
사무실을 걸어 나오고 탕비실로 이끈다. 초코파이가 보이고. 오예스가 보이고. 문이 닫힌다. 재현은 오예스를. 주연은 재현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야 소란통에 오롯이 단 둘이다.
"형. 오랜만이야."
"주연아..."
"보고싶었어... 진짜로..."
"그래..."
근데
나 수치스러우니까
우선 이것 좀 풀어줘라...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이주연 히스토리.
재현과 헤어진 주연.
...별일없이 그냥 잘 살았다.
잘 살다가
취업시즌 도래.
아악 좆댐...
큰일이다.
부랴부랴
어떤 블랙기업에 취업
모하냐면
아침에 일어나서
코인투자종용 문자 돌리기
점심에 제육덮밥먹고
좀졸다가
저녁에퇴근하는
개꿀.
ㅋㅋ
.... 하지만
사장의 배포를 따라가지 못했던게 죄?
어느날 사장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꿈꾸게 되는데...
'주연아.'
'넵.'
'너 군대 어디 나왔냐.'
'예...?'
'총 잡아보 적. 있어 없어?'
'네?...?'
그리고 정신차려보니
총들고 올블랙 착장하고
SM5 뒷좌석에 타있었다.
자 얘들아
겁만 주는거야
5억만 땡겨
5억이면
그 가방에 오만원권 가득
담기면 돼
5억이면
나 4억
너네 5천씩 나눠준다
알겠냐?
(우우...)
잘되면
인센으로 에어팟 하나씩 돌릴게.
(와아...)
그리하여 만만한 옆동네 은행으로 진입
솔직히
다들... 가슴에 총 하나씩은 품고 살잖아?
비록 나는
관악대 출신이지만...
괜찮다.
위급상황에는 북치듯
총으로 머리 갈겨서
기절시키자.
ㅎㅎ
근데
저기 저 행원
어쩐지 익숙한데?
에이
아니야
내가 아는 그사람은
개악성곱슬
만지면
개복치처럼 터져서
왜...너도 나 곱슬이라시러어..?하고
내 가슴에 안겨
징징대는 남자였지
봐봐
저사람
오대오 정갈한 가르마
직선의 엔젤링 머릿결
에이 아니네
그런데 음
맞는것 같기도
지그시지그시지그시
어라
이재현
형?
형 맞아?
맞네
저저
노잼일때 지루한 표정
맞구나
피티에스디온다.
내가 인스타에서본거
이거재밌지
하고 보여줄때
늘
저표정이었지
응
맞네
형
오랜만이다
근데
매직했니?
잘했다..
어디야?
거기잘하네...
정보좀...
그리고 지금. 재현은 이런 노답 인생의 주연이 답답하다. 어쩌자고 지금 이지경?
"이미 선금으로 십만원 받았어. 어쩔 수 없어."
여전히 계획 없는 것도 빡쳐.
"너 이거 범죄야. 장난 아니야. 너 잡혀가. 실탄은 또 어디서 챙겼어."
"몰라. 사장님이 줬어."
"미쳤네. 미친 새끼들. 아주 그냥 다같이 그라목손 마신 거야?"
"그러지 말고. 형. 그냥 모른 척 오억만 담아봐. 응?"
야이씨.
해줄 수 있으면 벌써 했지.
"아니. 나 대출 담당이라니까..."
내가 맘대로
금고를 어떻게 열어 자식아.
"아니 그럼 전화해서 물어봐. 잠깐 열면 안되냐고."
"장난하냐?"
"진심인데..."
말이 돼?
"너지금 나한테 할말 그것뿐이니?"
너 지금 나.
헤어지고
이년만에 만난 거야.
"알아. 반가워."
"하."
재현은 탕비실 간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려서. 너 아직도 이러고 사냐. 진짜 너랑 뭔 말이 안 통해. 진짜 사차원. 생각하다가 떠올랐다.
그래 나.
너랑 왜 헤어졌었던건지
갤러리아 앞에서 왜 싸웠던건지
기억났다.
*
그러니까 이주연은 낭만주의자. 이재현은 현실주의자. 아다리가 안 맞는 인물들.
청계천을 걷다 갑자기 신발 벗고 '낭만이잖아. 형.'하는 주연을 바라보며 재현은 최근 늘 가슴이 답답했다. 약속시간은 다섯시. 지금은 네시 반. 택시타도 약속 장소까지 가는데 늦는다. 그러나 여기서 마음이 급한건 재현뿐이다. 주연에게는 약속시간보다 길거리의 푸른 나무. 돌 위에 낀 이끼. 얼음장 같은 물 온도. 그딴게 더 중요하고.
'좋다.' 양 발을 담근 주연이 기분 좋게 읊조렸다. 주연은 늘 이런식. 현실에 착륙하지 못하고 늘 붕붕 떠있다. 가끔은 생각 없고 가끔은 너무하다.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붕붕 떠서 신이 난 주연을 억지로 붙잡아 바닥에 양 발바닥을 붙이는 건 재현의 몫이다.
'주연아. 우리 늦었어. 야. 지금 이럴 때냐? 아 형들이 잔소리한다니까. 그냥 가자. 좀.'
너는 너 밖에 모르지 진짜.
그 말이 처음엔 농담이었는데 마치 세뇌당하듯 어느 날부터 주연이 진짜 이기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번 거슬리니까 밑도 끝도 없이 절정으로 치닫는 것도 문제다. 지금 이런 것들까지. 평소라면 '그래. 뭐 조금 늦는거니까.'하고 말겠지만 주연이 청계천에 발을 넣고 혼자 와 좋다. 형 완전 시원하다. 형도 해봐. 할 때까지 재현은 쭈그리고 앉아 쳐다보기만 했다.
이유? 한심하고 싫어서.
결국? 늦었다.
다들 한마디씩 한다. 주연은 웃으면서 청계천 에피소드를 말한다. 다들 너 참 특이하다 한다. 눈으로는 웃으면서 다들 뒤돌아서는 한마디씩 하겠지. 걔 좀 이상하다고?
아. 그냥 그 모든 게 스트레스였다. 화가 나는 것도. 약속 자리에서 내내 기분이 다운되어 대화에서 제외되어 있던것도. 그래서 주연이 제 눈치를 보는 것도.
집으로 오는 길. 터벅터벅. 걷다 주연이 물었다. '형. 혹시 오늘 화났어?' 재현은 한숨을 토했다. 화났냐고?
너 진짜 몰라서 물어보냐? 하 진짜... 개념 좀 챙기자 주연아 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궁극적으로 싸우는 것도 짜증이다. 그래서 '아니?'라고 말하고 앞서 걸어갔다. 주연이 계속 뒤따라왔다. 어색한 공기. 평소라면 이러다가도 못 참고 재현이 먼저 야. 기분 풀어. 나 화 안 났어. 하고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던 것 같다. 그게 처음엔 좋아서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여고 공헌으로 느껴진다. 나만. 맨날 나만. 그래서 입 닫고 걷는다. 주연의 로퍼가 재현의 운동화 뒤축을 자꾸 밟는다. '아저씨. 같이 걸어요.'
안다. 장난치는 거다. 형 화났냐고. 화 풀라고. 괜히 한 소리 할 껀덕지 주는거 안다. 재현은 그것마저 주연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한테 떠넘기는 거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주연아. 나 인생이 피곤하다. 지금. 너도. 취준 생인 나도. 잔소리하는 엄마도. 돼지우리 같은 집도. 그래서 좀 차갑게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마. 좀.'
음. 지금 생각하면 거기서 '좀'은 뺄 걸. '형 얘기 좀 하자.' 결국 주연이 재현을 잡아 뒤돌게 만든다. 그때가 압구정 갤러리아 앞. 이상한 대형 곰 동상을 지나친 그 즈음. 재현도 주연을 바라봤다. '무슨 얘기.' '형 진짜 왜 이러냐. 할말 있으면 그냥 해.'
할말? 진짜? 해?
'주연아. 넌 매사를 그렇게 남한테 미루니?'
그러니까 그게 시발점. 재현은 몇년간 주연과의 연애에서 쌓였던 것들이 울분처럼 밀려왔다.
피곤하면 연락이 잘 되지 않는 것도. 나와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미루는 것도. 휴대폰 비밀번호를 멋대로 바꾸고 프로필사진에 한 번도 나랑 찍은 사진을 걸지 않는 것도. 네 친구들은 나 아니? 내친구들은 너 알아. 나 이런 거 요구하는 게 연인사이에서 무리한 거라고 생각 안해봤거든? 근데 네 앞에선 요구를 못 하겠어. 네가 싫어하고 귀찮아 하니까. 그런데 내가 요구하면 네가 싫어할 것 같으니까. 내가 네 눈치를 보는거지. 늘.
그런데. 너. 내 눈치 봐? 오늘 말고. 평소에. 아까도 그래. 늦었잖아. 누구는 낭만 없어? 그런데 현실하고 적당히 타협해야지. 그런다고 거기 그렇게 앉아서. 어? 남들 다 기다리는데. 그래놓고 마음에 걸리니까 나보고 화났냐고? 너를 눈치보게 만드는 나한테 화난게 아니고? 나 요근래 매일 너 만날 때마다 오늘 같았어. 숨막혔어. 재미없었어. 그래 이게 내가 너한테 하고싶은 말이야. 이제 만족하니? 너는. 너는 나한테 할말없어?
재현은 그냥 분리수거하듯 감정을 쏟아버렸다. 백리터 종량제 봉투에 다 쏟아넣고 그냥 면전에 던져버렸다. 주연은 어떨까. 상처받았을까?
그러니까 이주연은 낭만주의자 이재현은 현실주의자. 주연은 늘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그런 것들. 밤새 재미삼아 만들어 둔 괴상한 눈사람. 검은 피눈물을 흘리는 눈사람. 하하 웃겨. 하지만 자고 일어나니 누가 발로 차 무너뜨린 것인지 파괴되어 있다. 그 앞에서 주연은... 조금 슬펐다. 아침에 일어나면 형한테 보여줘야지. 생각했는데 그냥 부스러진 파편만 남아있다. 찰칵. 사진 세장 찍어 재현에게 보낸다.
[눈사람. 방금 죽었어.] 답장이 온다.
[살았던적이 없는 애들이야...ㅜㅜ]
아. 큭큭. 웃기다. 어쩌면 주연은 재현의 이런 점이 좋았을지도.
웃겨. 재밌어. 어쩌면 미친 짓을 같이 해줄 것만 같아. 줄 없는 번지점프를 같이 뛰어줄것 같아. 그럴것 같아. 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언제부턴가 형 좀 귀찮아하는거 티나. 언제는 나 이상해서 좋다며. 찬물에 담근 발이 하나도 시원하지 않다만 입으로는 '시원하다. 형도 앉아봐.'하고 종용해본다. 재현은 쭈그리고 앉아서 대답이 없다. 찰박찰박 주연은 몇 번 발장구 친다. 좀 재미없다.
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술 약속 가는 것보다. 그냥 형이랑 여기 앉아서 좀 쉬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냥 그런 의미인데. 혼자 이러면 무슨 재미야? 알았어. 일어날게. 축축한 발. 어쩌지? 재현이 한숨을 쉰다. 그러니까 왜... 하고 휴지도 없잖아 란다. 없지. 그냥 걸어가면 마르지 않을까? 하하!
다들 왜 늦었냐고. 잔소리. 어. 저 오다가 잠깐 형이랑. 청계천에 앉아있었거든요. 형 딱총나무 알아요? 나귀나무는요? 그냥 앉아서 그런 거 보면 좋아요. 가끔 네이버 스마트 렌즈로 찍어서 뭔가 알아보기도 하고. 그런 거죠. 스마트렌즈가 뭐냐고요? 아. 저도 얼마전에 알았어요. 맨날 형한테 물어보니까 그만 좀 물어보라고 알려준 건데 유용해요.아. 이런 거 재미없어요? 그렇구나. 그럴수 있죠.
주연아.
사람들은 그런거 안궁금해.
꿀주 비율이나 다음주에 떡상 할 HMM 주가나 궁금해하지.
디프레스.. 낭만 없는 인생 그런 거 살고 싶지 않아. 터벅터벅 재현의 뒤를 쫓는다. 아까부터 말도 없고 화난 것 같군. 형이 제일 싫어하는 거. 발 뒤꿈치 밟기. 화내. 화내. 하지만 재현은 화내지 않는다. 아저씨 같이 걸어요. 그때 재현이 뒤돈다. '하지마. 좀.' 주연은 그 말이 그냥 짜증. 뭘 하지마. 형이나 지금 이따위로 굴지마. 애냐? 언제까지 틱틱대는건데? 좀? 그 말이 제일 짜증나.
결국 주연이 재현을 잡아 뒤돌게 만든다. '형 얘기 좀 하자.' 그때가 압구정 갤러리아 앞. 이상한 대형 곰 동상을 지나친 그 즈음. 재현이 주연을 바라본다.
'무슨 얘기.' '형 진짜 왜 이러냐. 할말 있으면 그냥 해.' 봐주는 척하지 말고.
재현이 머리를 턴다. 화날때 하는 행동이네. '주연아. 넌 매사를 그렇게 남한테 미루니?' ‘…’
주연은 뭐라 반박할 게 없었다. 그 뒤로 재현은 쏟아부어버리듯이 감정을 토했다. 그 과정에서 주연은 쌓아온 저만의 낭만이 하나씩 부서져버렸다.
같이 즐겁다고 생각했던 추억들이 왜곡되어 나 혼자만 즐거워하던 병신같은 기억으로 급변한다. 상대는 즐겁지 않았는데. 나 혼자 웃고 있다.
그게 다 그렇게 싫었어? 그럼 말하지. 왜 받아주고 이제 와서 귀찮다고 난리. 화난다고 난리. 미룬 게 아니라. 형이. 화내니까. 말을 그냥. 듣고싶었던건데.
'이제 나 너랑 이러는거. 재미없어. 주연아. 어?'
주연은 그 말이 가슴에 사무쳤다. 모든 사유를 막론하고. 여름 밤. 춥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두사람을 쳐다본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돌아본다. 주연은 재현을 노려본다. 오분. 십분. 이십분. 한시간. 그리고 두시간. 재현도 똑같이 주연을 노려본다. 오분. 십분. 이십분. 한시간. 그리고 두시간.
'졌다. 됐다. 그만하자. 그래. 어차피 헤어지자는 말도 나보고 하라고 할텐데. 걍. 이제 헤어지자. 됐니?'
재현이 뒤돈다. 죽어도 그 장면 못잊는다. 주연은... 재현이 멀어진다. 멀어져. 점점 더...
*
...로 아름답게 포장해보지만... 결국 그냥 빡쳐서 길거리 쇠빠따 들고 달려가서 재현의 뒷통수를 쌔렸다는 얘기.
"네 덕에 실비 올랐다."
만져볼래? 재현이 묶인 상체로 분노에 몸부림친다. "헤어지고 나서 나도 그건 좀 미안했던것 같애." 실화냐? 주연이 미안하단다. 재현은 새삼 세월을 느낀다. 그래도 주연은 발전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낭만이니 헛소리하며 총 들고 설치는 건 답답하다만 적어도 미안하다 숙이고 들어갈 줄 알게됐다는것.
재현이 몇년간 개조해보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던 그게 알아서 고쳐지다... 역시 시간이 약 인걸까?
"그냥 대충 자수해. 어차피 나 돈도 못주고 쌔콤때문에 밖에 이미 경찰 깔렸어."
어떻게 알아?
...그냥 알아 자식아.
사실 전전긍긍. 대한민국. 그리고 XX은행 XX지점장님. 나 버린거 아니죠?
"흠. 잡혀가나?"
주연이 총구로 머리를 긁적이며 묻는다. 길게 늘어진 앞머리와 다르게 조금 짧게 깍인 옆머리가 드러난다. 당연한 소리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주연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 빵가는 버킷리스트가 있을지도... 넌... 넌 그런애니까....
그때 탕비실 밖에서 누군가 철문을 두드린다. 뭐하냐! 얼른 나와봐! 주연은 총을 집어넣고 말했다. 하여튼. 형. 나 모르는 척하고. 하라는 대로 해.
"뭐야."
"오예스 위치 좀 물어봤습니다."
"뭐야?"
오예스 어딨어.
여깄습니다.
혼자 처먹었냐?
아닙니다. 위치만 확인했습니다.
이새끼 직원이라 아는 게 많더라고요. 재현은 주연이 흔드는 대로 따라 흔들리다 '들어가 있어 새끼야.'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지점장 사무실로 던져졌다. 균형을 잃고 바닥에 헤딩. 고통스러워하는데 김명자가 다가온다. "괜찮아요? 뭐래요?" 한명덕도 다가온다. 박수길도 다가온다. "설마 우릴 죽인답니까?"
그들은 재현을 포함해 우리들을 죽일 생각은 없다는 것을 설명했다. 우선 고의로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저들이 생각 외로 멍청하기 때문에 실수로는 한 두명 정도 충분히 죽일수도 있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박수길이 좌절한다.
박수길. 국립대 교수 5년차. 얼마전 청약 당첨되어 얼마나 기뻐했었나. 드디어 나도 서울에 집 생긴다. 설레여서 잠도 못 잤는데. 대출받아서 내일 잔금만 치르면 끝인데. 용산 노른자 땅에서 피어난 분양은 놓칠 수가 없는데. 집은커녕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놓이다니...
김명자도 마음이 급했다. 배추가 이미 문 앞에 도착했을 거라는 거다.
현재 시각 오후 2시경. 이미 이지경 된지 한시간 이상 경과. 이젠 동료들도 모두 알테고 어쩌면 뉴스를 탔을지도. 서울시내 한복판에 총기소지 은행강도 등장. 일반인 셋, 은행직원 하나 인질로 감금중! 헤드라인 떴겠지.
재현은 포기상태. 김명자도 포기상태. 박수길은 분노상태. 한명덕은 대략 졸림.
"무섭기보다 지루한데요." 박수길의 불평과 동시에 다시 문이 열린다. 아무개 1 등장. 2도 등장. 그 뒤에 팔자미간 이주연 등장.
"한 명 나와." 잠깐. 내가 고른다. 아줌마 말고. 아저씨 말고. 그래 행원이 제일 좋겠지? 너 나와. 아무개의 지명에 재현이 엉거주춤 일어선다. 어씨발. 저새끼 왜저렇게 변태같이 묶어놨어?.... (주연:부끄…) (재현:ㅆㅂ)
어쨌든. 너만 나와. 야! (아무개 2 : 예 형님) 너 여기서 이 인간들 보고 있어. (아무개 2 : 예 형님)
문이 닫히고. 어어 이봐요! 뭐하십니까!!! 재현은 뒷덜미가 붙잡힌 채 끌려간다. 그리고 바로 유리창에 처박힌다. "윽!" 얼굴이 밀리고 뭉개 진다. shit! 뭐야? "지금 부터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들어."
저 앞에 경찰들 있거든?
에? 역시.
닥쳐!
자. 딱 삼억만 요구한다.
현실적이지?
많이 네고했어.
(주연: 형님 제 돈은...)
(아무개 1: 조용히 해. 넌 더 챙겨줄 테니까)
이주연 이리 와봐.
자. 이거 쥐고.
이새끼 머리에 가져다 대고.
(주연: 네? 네?)
좋아. 각도 좋아.
그대로 있어.
(아무개 1. 그대로 빠져나간다.)
(주연은 재현의 뒤에 서있다. 넘겨받은 권총은 재현의 머리통을 겨누고 있다. 미간은 한없이 벌어져 있다. 당황스럽다.)
자. 주연아.
내가 시키는 대로
가능한 따라해봐.
(주연: 가능한)
주연아.
(주연: 네!)
나와라.
그냥 내가 하련다....
재현은 창문에 눌린 그대로 순간 바깥에 노출된다. 몰랐는데 은행 앞은 경찰차 여섯 대가 대기중이었다. 그 뿐이냐. 이상 한참 언급되지 않았던 등장인물들인 사람들(ex. 커피사러간 직원들) 이 은행 앞에 한줄로 서있다. 양손을 마주잡고. 아마도 입모양은 어떡해 어떡해. 재현씨 어떡해. 겠지… 어? 저건 뭐야. 제길! KBC 8시 뉴스잖아!
재현은 서둘러 양 볼을 머금는다. 조금이라도 덜 눌려 보이려는 노력. 살짝 머리를 움직여 앞머리를 내린다. 우수에 찬… 그런 컨셉. 유리창으로 주연이 살짝 비친다. 형 너 진짜 존나 그대로구나. 하는 눈빛이지만… 씹자! 아마도 온동네 주민들이 모두 다 나온건지. 자주 방문하는 꽈배기집 사장이 울고있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전. 아마도. 아. 자세히 보니 그냥 보고 있는 것뿐.
그렇구나. 그래요. 사장님. 사장님이 나 때문에 울면 좀 이상하긴 해요.
“삼억. 삼억이다. 삼억이야! 삼억만 가져오면 아무도 안죽여!” 아무개가 소리쳤다. 밖에서 웅성웅성 하기 시작하더니 경찰이 메가폰을 잡는다. 대충 진정하라는 소리다. 돈을 준비할 테니 사상자가 없게 해달라는 부탁도 한다. 병신들. 여기가 은행인데 뭘 어디가서 돈을 준비해. 그런데 어라? 또 속는다. 지랄. 이거 진짜 몰래카메라 맞네. 헛웃음. 재현이 한 번 더 유리창으로 밀린다. 으윽. 귀갑묶기 당한 끈이 묘한곳을 스친다. 유리창으로 주연을 한 번 더 바라본다. 너… 내 예민한 부위… 기억하는구나. (ezr) / 형…당연하지…
근데 잠깐.
나 이대로 KBC 방송 타는거야?
사건 발생 2시간 경과
아무 일도 없고 한명덕이 배고프다고 고함 지름.
이재현. 인격모독 주장하며 귀갑묶기 노끈 풀어달라 요청. 해체 과정에서 이주연과 야릇한 분위기 발생.
사건 발생 2시간 반 경과
이재현의 협력으로 탕비실에서 김치사발면 7개 수급.
박수길. 맛있다며 2개 달라고 요청한 이슈 발생.
사건 발생 3시간
강도 3인 불안장애 발생.
아.
그러니까.
애초에 돈을 줄리가 없잖아……………… 뉴스 못봤어? 그알 못봤냐고. 돈 절대 안 준다니까………….. 재현은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계해보려는 강도 3인의 플랜을 듣고있자니 지능이 퇴화된다. 제일 짜증나는거. 저딴 헛소리에 집중하는 이주연. 답답하다. 가슴을 쳐본다. 김명자가 속이 답답하냐고 묻지만 살짝 무시.
“저는 사장…아니 형님이 하자는 거면 다 할게요.”
뭐? 저저저…
사장이 하라는 거 다 할게요? 이런씨. 대신 빵가라고 하면 갈거냐?
“대신 빵 가라면 가고요.”
“미친거 아냐?”
재현의 난입. 주연아 너 미쳤니?
약간?
아하.
는 무슨!!!!!!!!!!!!!!!!!!!
“미친새끼들아!! 순진한 놈 데리고 뭐하는 거야!!”
재현이 벌떡 일어나 외치자 박수길이 따라 일어선다. “이재현씨!!!! 절대 저들을 자극해선 안 됩니다!!!” “꺼져 씨발!!” “침착하세요. 제 말을 듣고. 심호흡을 좀 하시고요.” 자다 깬 한명덕. 박수길에게 심리학과 교수냐고 묻는다. “통계학과입니다.” “뭐야?”
통계는 과학입니다. 실제 DB로 굴러간다구요. 지금 이재현씨 위험해요. 불안장애가 온 강도들을 사실적시로 자극하고 있단말입니다!!
듣던 아무개.
실탄 장전 후 박수길에게 겨눈다.
‘이제 조용히 있겠습니다…’
박수길.
진정하다.
그리고
주연은.
그러니까 진심이다. 사장이 그러라면 그럴 생각이다. 이유? 그냥. 하라니까. 아~ 생각하기 싫다. 복잡하다. 단무지로 살래. 근데요. 저 돈은 좀 주나요? / 당연히 주지 짜식아! 사식도 넣어주마 / 그렇다면…
“저기. 다시 생각해봐요.”
재현이 끼어들었다.
“너 거기 가면 나 못 봐.”
형을..
못봐?...
음…
그건.
그건 조금
괴로울지도.
그런데…
“우리 이미 몇년간 안보지 않았어?”
아차.
사건 발생 3시간 반.
“뭐야 뭐야?!” 지루함에 늘어져 있던 무리에서 한명덕이 놀라 벌떡 일어난다. 시끄러운 굉음과 함께 아무개2가 달려온다. “저새끼들이 뚫고 들어오려는 것 같은데요. 형님?”
“이런 씨발 연장 챙겨라.” 하여간 경찰놈의 새끼들 삼억으로 퉁 칠수 있는걸 꼭 한 두명 죽어야 정신차리지. (박수길 : 흐어억 저는 안됩니다.) 너 이리와! 박수길이 불려 나갔다. 관자놀이에 총구가 들이밀어진 채. 운다. 김명자가 소리지른다. 어라?
재현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우리. 김치사발면 먹고 누워있었잖아요? 갑자기요? 김명자가 따라 불려 나간다. “잠깐 인원이 안맞잖아.” 아무개 2가 재현을 지명하려는 시점. 주연이 재현의 어깨를 누른다.
“형님. 이새낀 제꺼.”
귓가에서 장전 소리가 들린다. 김명자가. 그리고 한명덕이 그리고 박수길이 잡혀 나간다. 재현은 주연에게 뒷덜미가 눌린 채 있다.
쏠거니?
구라치지마.
주연이 재현의 등뒤에 가까이 달라붙는다.
주연아.
형
엉덩이
에
니
거시기.
닿는다.
떨어져.
좀.
불쾌하네.
차라리.
쏴라.
어차피.
아까 뉴스타서
쪽팔려서
죽기직전이야.
쑥덕이는 두사람. 의심하는 여러 사람. 주연이 총구로 재현의 머리통을 밀며 소리쳤다.
“조용히좀 해. 왜이렇게 말이 많아졌어?”
그리고 작게
내가 형을 어떻게 쏴. 그런 소리 하지마. 열 받아서 쏠수는 있겠지. 근데 지금은 아직 아니야. 그리고. 그게 닿는 건 어쩔 수 없잖아. 그럼 형이 내 뒤에 서던가. 그럼 됐어? 하여튼. 조용히. 하라는 대로. 좀 따라와. 경찰 와있으니까 확률상 몇 명은 살아서 나가겠지. (그게 무슨소리니) 어차피 형. 나는 빵가는 엔딩이야. 됐어. 희망없어. 가면 출소할 때 두부나 좀 들고 서있던가.
금자씨처럼.
알지?
주연은 낭만파.
그러니까.
지금 살짝.
금자씨가
되고 싶을지도….
얘가 아직도 정신을… 재현은 퍼뜩이는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잠깐! 시선집중. 아무개와 여러 시선이 재현과 주연에게 꽂힌다.
“여러분?”
Attention plz.
Im 어그로.
“아깝잖아요.”
우리. 이대로 가는거 아깝잖아요.
제가.
다른건 몰라도.
이건.
있거든요…
재현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넷째 손가락에 고리를 끼운 채 열쇠를 꺼낸다.
“지점장님꺼. 개인 창고함. 골드바 보관하는 곳.”
여러분 도움이 필요합니다.
앞에서
관종짓 좀 해주세요.
저는 뒤에서
골드바
가져올 테니까.
솔직히
나도 억울하거든요
어차피 나가면
망신당하고
깨지는거
골드바라도
챙겨가요 우리
내가 보관할게요
정말
양심에 대고
선언합니다.
그래요
안믿기는거 알고요
그럼
그래!
감시하면되겠다.
저기요?
(주연 : 예?)
본인이 따라오시면 되겠네.
(주연 : 에?)
우선 골드바 털어올게요. 내가.
그리고 허튼짓하면 그냥 쏘던가요. 시발 막말로 여기서 그쪽들한테 죽나 저기서 골드바 털다 죽나 저는 그게 그거니까. 못믿겠으면 말고요. 그냥 경찰한테 털리죠 뭐. 난 손해보는거 없으니까.
*
이게
되네.
재현은 황당하다.
이딴 전개가 다있어?
지점장 사무실 밖. 사이렌 소리와 함께 메가폰이 울린다. 사방에서 조여오고 있으니 피곤하게 하지 말고 네시전에 기어 나오라는 소리.
에 맞서서 그럼 이억! 그럼 일억! 그럼 팔천! 그럼 칠천! 네고하는 소리.
혼란함 속에서 재현은 주연과 함께 단 둘이 방안에 서있다.
"주연아."
재현은 다짐했다. 내가. 내가 너 살릴 게. 너 감빵 안가. 멍청아. 그리고 자켓을 벗는다. 주연이 바라본다. 휘둥그레. "형 몸 좋아졌구나." "넌 지금 이상황에..." 그런말이 나오니...
"벗어."
? 형 안돼. 우리. 이건 아니야. 아니 괜찮은데. 지금 여기선 아니야. 주연이 거부한다. 아니 사실 거부하는 척 약간 치솟는 기대감. 안돼. 안돼. 안돼돼돼돼돼... …돼! 그런데 재현의 뜻은 그게 아니다. 주연을 끌어다 모서리 환풍구를 가르킨다.
나
사실 두시간 전부터 생각했던건데....
"우리 나가자. 저기로."
"저기로?"
아니...
왜...?
궁극적인 질문...
저기는...
문이 아니잖아?
주연아.
너 문으로 나가면
그대로
교도소 직빵이야.
…근데?
나 너 빵 가는 거
못 본다.
형.............................................................
절대 못 봐…
...
내가 보내는 거 아니면
다른 건…
(솔직히. 나는 한 번쯤 얘를 보낼 수 있다라는 전제하의 발언임)
그러니까 재현의 플랜은 이렇다. 우선 이 소란통에 환풍구를 뚫고 뭐 여튼 기어가본다. 건축설계학적으로 뭐랑 이어져 있겠지? 잘은 모르지만 은행 뒤편에 이어진 외부 환풍구가 있는 것도 같아. 우선 저걸 열고 기어가보자. 그럼 어딘가가 나오겠지? 자. 그럼 그때부터 그게 내가 아는 그곳이길 빌어야지. 아니면 어쩌냐고? 그건 생각안해봤다 사실... 그래도. 긍정적인건! 분명 어딘가로 이어져는 있을 거란 거야. 나가. 나가서. 너는 협박당해서 벌인 짓이라고 해. 내가 회유해서 빠져나온 거라고 해. 도와 줄게. 그럼 적어도 빵은 피할 거 아니겠냐. 물어보면 울어. 그냥 울어. 사연팔이 해. 어릴적부터 팔도강산 할머니랑 북치면서 돌고 구걸하다 길 잘못들었다고. 아니면 귀신들린척 해. 지난 보름달 밤 귀신들려서 정신차려보니까 총들고 있었다고 해. 내가 대신 증언해줄게. 환풍구에서도 몇번이나 신내림 왔다고. 해줄게. 그정도는 해줄게.
형....
그러니까
그냥 너 나만 믿고
내가 하라는대로 해.
나만 믿고
알겠어?
/
솔직히.
이 플랜의 문제점?
그냥 모든것…
재현은 유격훈련에서도 받아보지 않은 괴로움속에 가로세로 육십센티 사각 통로를 기어간다. 솔직히. 환풍구를 따서 들어가는 순간부터 시발 이건 아닌데 생각했던 건 인정하는 바. 하지만 뒤에서 저를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주연이 있었다. 뭐랄까. 다시 만난 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결국 환풍구를 기어간다. 후회한다. 자켓 괜히 벗었다. 셔츠에 바로 쓸리는 비포장 도로가 존나 아프다. 팔꿈치? 걍 저세상...복근은 쓸리고 땀과 습기로 이주전 매직한 머리는 엉망.
형. 나 팔 아파. 이거 맞아? 뒤따라오는 주연도 십분 텀에 한마디 한다. 형 이거 아닌것 같애 그냥 돌아가자. 야 이재현 시발 거기 서봐. 이거 아닌것 같애. 재현은 묵묵히 기어간다. 주연아. 지금와서 뒤로 어떻게가니. 너 아직도 그렇게 생각이 짧아? 그게 되면. 오분전에 이미 뒤로 돌아가자고 내가 먼저 말했지. 기다려봐. 상식적으로 곧 도착할 거야...
만약에 형...
응...
이 끝이... 바깥이 아니면 어떡해...?
부정타게 그게 무슨 소리니?
만약 그럼 우리 뒤돌아 못 나가겠지?
또 시작. 주연의 n적 망상. '그럼 우리 여기 끼어서 그냥 죽는거야?' 미라처럼? 재현은 생각했다. 우선 둘이 사라졌으니까 찾을 테고. 눈에 띄게 환풍기 뜯고 왔으니까 누가 발견하겠지. 사람은 몇십시간 고립된 채로도 살아남는데. 안 먹어도 안 마셔도. 추워서 얼어죽긴 하겠지만 아마도 그전에 발견될 거니까.
그러다 주연의 말도 안 되는 말 한마디에 이런 생각들을 하는 제가 우스워지기 시작한다. 어. 그냥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뭐 그런 느낌. 네 엉뚱한 얘기에 대답해주는 나. 뭔가. 그리웠던...것도? 나 사실 너 차단했다고 하고. 몇번 전화해보기도 했는데. 몰랐을 걸.
'뭐...아무래도 감빵보단 낫지.'
'그치. 그래도 형이랑 있으니까.'
외롭진 않을것 같아.
재현은 잠시 멈췄다. 좀 감동받았다. 그리고. 과거가 그리웠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 오늘? 그때로? 좀 돌아간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네가? 좀 그리? 웠다… 정말. 자존심에. 말은 못했지만. 차단한척 연락도 했다. 보고싶어서. 만나고싶어서. 그리워서.
너는알까. 헤어진 걸 내가 후회했다는 걸.
자존심. 은 대체 뭘까. 만약 내가 너한테 상처 줬다면 미안해. 사과할게. 용서해줘. 라고 말하고 싶어. 근데 자존심에 말이 안 나온다... 그때. 재현은 어두운 환풍구를 뚫고 비치는 빛을 발견한다. 뒤에서 재현의 구둣발만 보고 따라오던 주연도 마찬가지다. 끝이다. 여기가. 아마도. 이제 우리 끝. 여기 나가면. 안녕... 인 사이...
점점 느려지는 속도... 주연은 어쩌면 조금쯤 재현의 마음을 눈치 챘던것 같다.
바보. 아쉬워서 그런거야? 치잇... '주연아.' '아 왜. 솔직히 말해 그냥.'
“..................................우리 좆됐다.............................”
쏟아지는 한줄기 빛. 환풍기 통로는 여기서 끝.
재현의 눈앞에는 바깥은 커녕.
또다른 곳으로 향하는 구멍 뿐.
형 미친새끼야...
환풍구라며............?
뒷 이야기 1.
은행강도? 요즘 세상에? 미친놈들이군. 출동하자마자 멍청이들 갖고놀기. 그와중에 은행 유리창에 비치는 귀갑묶기 당한 저 변태새끼는 뭐지? 아리송. 응 시간 대~ 충 때우다 시민들 대충 모였으면 이제 쑈 그만하자. 얘들아 가서 쓸어버리자. 하고 전기총 들고 진입. 유리창 깨고 들이닥쳐 손날로 명치 넥슬라이스!! 두번에 강도들이 쓰러진다. 이거뭐야. 웬 김치사발면 냄새? 참나. 여기서 끓여드신겁니까? 차하… 황당하군. 그런데 네? 두 명이. 빈다고요??? 어디. 어디로 간 건데요? 하고 가보니 휑~한 점장실. 대학교수라는 피해자가 다가와 말한다. “아무래도 어딘가로 둘이 탈출한 것 같습니다만.” “아저씨. 우리도 알아요…”
그리하여 상황은 10분만에 종결됐는데 그게 실종자는 어떻게 처리를 해야하지? 기사 낼까요? 방송 때릴까요? 메가폰 잡고 실종자들 돌아오라고 하소연 해볼까요? 담배 말린다… 한대 우선 피우시죠… 기자들 눈을 피해 담배 한대씩. 씁하 씁하- 당혹감에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문득 뭔가 이상함을 느끼게 되는데…
"어잇 씨발 이거 뭐야?!!!!!!!!!!!!!!!!!"
김순경은 우연히 발 밑을 바라보다 소리지른다. 아아악!! 아아악!!! 아아아악!!! 놀라 사람들이 쫓아온다. 미쳤냐? 야.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아아악!! 밑 밑밑!! 밑에 사람이 있어요!! 뭐?! 아씨이이이이발 이거뭐야?!!!
하수구 뚜껑을 양손으로 잡은 네개의 눈알.
구정물을 뒤집어쓴 인간 둘.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살려주세요...' 하는 인간들.
심약한 김순경은 재현이 하수구에서 손을 뻗는 텀에 그만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훗날 평가하기를 전성기 시절의 주온을 보는줄 알았다나 뭐라나... 뭐? 거기 사람이 있다고? 구경거리로 몰려든 사람들. '괜찮으세요 거기 두분?'
세상에 실화야...? 뭐하고 있어! 빨리 궁금한이야기Z에 제보 안하고!
저기… 저희 우선 좀 꺼내주시면...
야야! 야인마! 사람부터 구해야할거 아니야! 어이쿠 이거 왜이렇게 무거워!
안되겠다. 네명이 들자. 자 모서리 하나씩 하나 둘 영~~차~!! 하나 둘 영~~차~!!! ... 결국 수공업으로 들려지는 격자 하수구 뚜껑.
쏟아지는 빛.
…끝이구나. 나 나온거 맞네. 우리. 나온거 맞아. 환풍기 통로의 끝… 의도치 않게 하수구 통로와 조우하다… 형 시발놈아 이걸 어떻게 기어가라고 진짜. 죽여버린다 나가면. 하며 욕받이 십분. 탈출 성공….
허무함. 경찰들에 의해 무뽑기로 뽑힌 채 재현은 주연을 바라봤다.
주연도 재현을 바라봤다. 온몸 먼지와 구정물을 뒤집어 쓴 꼴 봐라. 최악이다.
주연아.
응.
너랑 난 왜 맨날 이럴까. 왜 맨날 이런 꼴일까?
'형.' '왜.' '형 냄새나.' '응. 너도.' 오랜 긴장이 풀려서일까? 굳어있던 얼굴이 풀린다. 주연이 먼저 웃는다. 볼에 얹혀지는 보조개. 야. 웃겨? 이게 웃겨? 야. "웃기냐?" "어."
형은 안웃겨?
나?
웃기지 씨발… 하다하다 진짜…
결국 하수구에서 구조되어 경찰차 본네뜨 위에 앉아 꼬린내 풀풀 풍기며 깔깔대는 2인. 겨우 잦아든 웃음. 주연이 구정물 진득한 머리를 재현의 어깨에 기댄다. 형. 있자나. 나 진짜 인정하기 싫긴한데.
난 역시 형이랑 있을 때가
제일 재밌는 것 같아.
뒷 이야기. 2
이주연 피의자에서 피해자로 신분 전환
KBC 8시 뉴스. 재현의 귀갑묶기는 선정성 이슈로 모자이크 처리 후 송출 결정.
뒷 이야기. 3
XX은행 이재현. 용감한 시민상 수상.
이주연. 옆에서 축하 이슈.
뒷 이야기. 4
용감한 시민상 수상자 이재현 씨.
과거 압구정 갤러리아 앞 쇠파이프남 릴스 주인공으로 밝혀져…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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